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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의 영원한 경쟁사 BMW에 대해

독일의 고급 자동차 및 오토바이 제조사. 전반기에는 비행기용 엔진을 만드는 사업체로 출범했으며 1923년에 첫 이륜차를 만들고 승용차를 처음 만든 것은 1929년이다. 2013년 BMW 90주년 기념 모자를 보면 오토바이 사업부의 이름인 BMW 모토라드라고 되어있다고 합니다. 2016년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의 왕좌인 브랜드이다. 스포츠 세단의 역사가 길지만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시장에서 최초로 성공한 브랜드이다. 특유의 스포츠성을 통해 수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고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다. 수두룩한 경쟁 자동차 브랜드들이 각자의 스포츠성을 내세우지만 스포츠 세단의 아이콘이자 그 시장의 왕좌의 자리에 있는 브랜드.
본사는 뮌헨에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뮌헨 올림픽 공원 입구 근처에 있다고 합니다. 본사 건물이 신축 공사 중일 때는 박물관을 올림픽 공원 내에 임시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그 옆 약간 나즈막하고 둥근 밥그릇 같이 생긴 건물에는 BMW 박물관이 있는데, 유료[6]로 입장해야 한다. 참작으로 BMW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위로 올라가서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서면 BMW 박물관과 비교해 매우 작은 롤스로이스 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BMW 박물관을 관람했다면 무료다. 영어식으로는 '비엠더블유'이고 해당 표기가 통상적으로 사용되지만, 독일어 두문자어 발음인 [ˌbeːɛmˈveː]에 근거해 국립국어원의 독일어 표기법을 적용한다면 '베엠베'가 된다. 자주 보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일부 언론사에서 BMW를 이렇게 표기한다. 바밤바 BMW는 약자이고, 독일어 공식 명칭은 Bayerische Motoren Werke (바이리셰 모토렌 베어케)이다. 독일에서 BMW를 검색하면 Bayerische Mist Wagen이라고 출연하는 경우도 있는데 직역하면 '바이에른 똥차'라는 뜻으로, 바이에른 주에 대한 타 지역 독일인들의 감정 등이 섞인 듯. 여담으로 흑인들이 농담으로 흑인들이 제일 원하는 차라고 해서 "Black Men Wish BMW"라고 말한다고도 한다. 영어 공식 명칭은 Bavarian Motor Works (바바리안 모터 워크스)이다. 이 바바리안 (Bavarian)은 '바이에른의 (형용사), 바이에른 사람 (명사)'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야만인을 뜻하는 'Barbarian'이 아니다. 해석하자면 "바이에른 원동기 (엔진) 공업사" 정도가 된다. [7] BMW 하면 멋져 보이던 것이 속뜻을 알고 보면 왠지 소박하다. Motoren을 자동차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비행기 엔진 제작사에서 시작한 흐름을 생각해 보면 자동차 공업사보다 원동기 공업사가 타당하다. 북미에서의 별명은 비머 (Bimmer)로, 쉐보레 → 쉐비 (Chevy), 삼성 → 새미 (Sammy), 메르세데스-벤츠 → 멜 세이 디스[8] (Mercedes)처럼 발음하기 귀찮아서 부르는 애칭이다. 다만 멜 세이디 스는 벤츠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AMG,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등을 모두 아우른다. 또한 Bimmer와 Beemer를 혼동하는 상황이 있는데 Bimmer는 BMW 자동차, Beemer는 BMW 오토바이의 미국식 애칭이다. 그러나 정작 BMW 코리아의 언론 공식 보도자료에도 '비엠더블유'라고 하고, 7 시리즈 CF에서도 '비엠더블유'라 읽는 걸 보면 회사 측에선 어떻게 읽든 별로 신경 운용하지 않는 듯하다. 어차피 두문자어이기 때문에 자국에서 통용되는 발음으로 부르면 무방하다. RPG-7을 러시아 외의 국가에서 '에르뻬게-씸'이라고 읽진 않듯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죄다 '비엠더블유'라고 부르며, 영어가 익숙한 한국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의 알파벳 발음을 적용하여 ‘비엠두블베’, 러시아에서는 독일어와 비슷한 발음인 '베엠베 (БМВ)'라고 주로 불린다. 영국의 오디오 제조사인 B&W와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 B&W는 비엔더블유, BMW는 비엠더블유. 일반인들은 둘을 헷갈려하며 오디오 파일이라 해도 발음이 꼬이면 틀린다. 독일 현지에선 베운트붸와 베엠붸로 헷갈릴 사유가 없다. BMW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시작되었다. 뮌헨의 오베르비젠펠트 공항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구스타프 오토의 바이에른 항공기 공업(Bayerische Flugzeug-Werke, 약칭 BFW, 1916년 설립)[9]과 카를 라프의 라프 엔진 공업사 (Rapp Motorenwerke, 1913년 설립)는 서로 수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1917년 BFW 공장은 하루에 약 200여 대의 항공기를 생산 중이었는데, 공장이 큰 화재로 불타버려 가구나 생산하게 돼버렸고 라프 엔진 공업사는 몇 번의 사업실패를 겪고 있었지만 1917년 1월에 막스 프리츠가 합류했다. 막스 프리츠는 아주 중요한 인물인데, BMW 모토라드의 아빠와도 같다. 또한 성공적이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1914년 레이스카의 디자인에도 관여했던 인물이다. 이후 프리츠는 BMW의 첫 오토바이인 R32의 발매 후 BMW AG의 이사가 되었으며,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수석 디자이너도 맡았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뮌헨 공장을 관리하다 아이제나흐 공장으로 넘어가 1944년까지 근무했으며 1945년 은퇴하였다. 1966년 타계. 프리츠는 라프가 설계한 골칫덩어리 직렬 6기 통 엔진을 손봤다. 덕분에 큰 계약을 따는 데 성공했고, BFW보다는 그나마 좋은 상황이었다. BMW Type IIIa 엔진은 BMW가 처음으로 계약을 따내 개발한 물건이다. 막스 프리츠의 카뷰레터 설계 덕에 고고도 성능이 매우 뛰어났고 라프가 만들었던 오리지널 엔진의 진동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막스 프리츠가 베를린 당국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1917년 말 완전하게 시련을 거쳐 독일 제국 군부로부터 2000대의 계약을 치르게 되었다. 생산된 엔진은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군의 전투기에 탑재되며 이 엔진이 탑재된 포커 D VII를 조종했던 에른스트 우뎃이 공중전에서 30번의 승리를 도달하는 등 연합군 항공기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지만, 그 등장이 너무나 늦었기에 큰 상승을 남기긴 어려웠다. 1917년 7월 25일 카를 라프가 건강악화로 사임하고 프란츠 요세프 포프가 회장 자리를 채우면서 기업체의 이름을 바이에른 원동기 공업사 (Bayerische Motoren Werke), 줄여서 BMW로 바꾸게 된다. BMW라는 이름은 이때 시작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주가 지나자 모든 비행기용 엔진의 생산이 중단되어 버렸지만 포프는 1919년 2월에 공장을 다시 가동해 BMW IIIa 엔진의 개량형인 BMW IV 엔진의 추가 개발을 시작했다. 프란츠 제노 디머가 이 엔진을 사용해 고도 9760m에 도달하는 세계 기록을 세웠지만 독일은 패전국이었고 FAI (국제항공연맹)는 이를 등재하지 않았다. 6월 28일 디머의 비행 이후 11일 만에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1920년 중반까지 항공기 및 엔진 생산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BMW는 기차용 공압 브레이크 정도나 겨우 계약을 따내면서 만들게 되었다. 한편 BFW는 오토바이 제작을 시작했는데 BFW의 첫 오토바이는 1920년에 출시한 한 프란트 (Hanfland) 제143 cc 2 행정 엔진을 탑재한 Flink라는 오토바이였다. 이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라기보다는 엔진 달린 자전거에 가까웠다. 신나게도 같은 시기에 BMW 역시 오토바이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공장 감독관이자 1914년 빈-뮌헨 레이스에 참가해 3위를 차지한 이력이 있던 마틴 스톨이 포프에게 오토바이 엔진개발을 설득한 것이 개시 가었다. 마틴 스톨은 이 더글러스 500 cc가 레이스에서 보여준 신뢰성에 감탄했었고 포프에게 유사한 엔진 생산의 승인을 설득했다고 한다. 허용이 떨어지자 마틴 스톨은 확신의 1914년식 수평대향 2기 통 더글러스 500 cc 오토바이를 가져와 해체했고 복제품 제작에 불만이 많았던 막스 프리츠는 마지못해 부품들을 측정해 카피한 엔진에 나름의 개량을 가했는데, 이렇게 BMW M2 B15 엔진이 탄생했다. 2는 2기 통, B는 박서를 의미하며 형태 자체는 더글러스의 실린더를 앞뒤로 배치한 형태와 똑같았다. 이 오토바이용 엔진은 이후 여러 기업체의 오토바이에 탑재되었다. 마틴 스톨이 뉘른베르크의 빅토리아 바이크를 찾아가 이 엔진을 빅토리아 바이크에 실어달라고 설득해 탄생한 빅토리아 KR1이 유명하다. 이 엔진이 탑재된 오토바이 중엔 파산위기에 빠진 BFW가 빅토리아와 경쟁하기 위해 1921년 말에 판매했던 Helios도 있었다. 마틴 스톨은 정작 1922년에 기업체를 떠났는데 BMW가 여행경비로 100 마르크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후에 빅토리아에서 KR2라는 오버헤드 밸브를 장착한, 당시 독일에서 제일 잘 나가던 스포츠 오토바이를 제작했는데 BMW의 R32를 포함한 그 어떤 오토바이보다도 우월한 성능을 보여줬었다. BMW, BFW 이 두 회사는 1922년 6월에 합병되었다. BMW는 BFW를 합병하면서 BFW 부지로 옮겨가 BFW의 Helios 오토바이 생산라인과 재고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마침 빅토리아에서 BMW의 M2 B15 엔진을 더 이상 납품받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오토바이의 생산라인이 BMW로 넘어오고, 당시 회장인 포프에게 오토바이 제작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오토바이 제작의 미래를 본 포프는 막스 프리츠에게 완전한 형상의 오토바이 설계를 지시했다. 막스 프리츠는 뒤쪽에 위치한 실린더의 보다 효과적인 냉각을 위해 기존 BMW M2 B15 엔진의 앞뒤 실린더 배치를 좌우 배치로 변경했다. 또한 신뢰성과 유지보수를 위해 밸브 타이밍 기구들을 안쪽으로 전부 밀폐시키는 형식을 활용하고 파이널 드라이브에 샤프트를 구성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샤프트의 관절부를 없애버리기 위해 프레임을 통짜로 구성하고 고무 디스크를 사용해 충격을 흡수했다. 이런 구성은 막스 프리츠의 디자인이 최초였고 이후 제작되는 BMW의 모든 수평대향 엔진 탑재 오토바이는 이 좌우 배치형 수평대향 2기 통과 샤프트 구동이라는 틀에서 제작된다. 당시 생산했던 R32는 프리미엄 오토바이었고 금액도 비쌌다. 그렇다고 엔진의 출력이나 브레이크 계통이 다른 기업체의 바이크보다 훌륭하거나 혁신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R32가 잘 나갔던 이유는 시대를 앞서간 품질과 신뢰성, 획기적인 유저 친화적 설계와 편리한 정비성이 다른 500 cc 오토바이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후에 오버헤드 밸브를 적용한 프로토타입 R32가 1924년 ADAC 동계 랠리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이는 BMW의 첫 번째 모터스포츠 대회 우승 기록이다. 이 프리츠의 좌우 배치형 수평대향 엔진 설계는 1922년 12월에 도면이 그려졌는데, 좀 더 이른 때인 1919년 영국의 솝위드 ABC 모터사이클에도 같은 형상의 좌우 배치형 엔진이 탑재되어 있었다. 솝위드 ABC는 BMW가 자신들의 오토바이를 그대로 복사했다고 비난했지만 솝위드 ABC의 오토바이는 파이널 드라이브가 샤프트가 체인 구동방식이었고 카뷰레터 등의 핵심 설계에서 프리츠의 박서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입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당시 막스 프리츠는 솝위드 ABC제 오토바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1923년 9월에 베를린에서 BMW의 첫 오토바이인 R32가 팔리게 되면서 BMW는 오토바이 제작사 업체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BMW는 1928년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아이제나흐 자동차 공장을 인수한 뒤, 원래 생산되고 있던 영국제 오스틴7의 라이선스 생산 차량인 딕시(Dixi) 3/15를 BMW 3/15로 고쳐 4륜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보다시피, BMW는 혼다처럼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먼저 생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BMW는 나치 독일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켜 자사의 오토바이와 군용기 엔진 등 군수품을 생산해 납품한 전범기업이었다. 이 당시 납품했던 엔진 중 대표적인 것은 포케-불프 Fw190의 엔진인 BMW 801. 이밖에도 메서슈미트 Me 262 슈발베의 엔진을 납품하는 등 여러 물자들을 납품했다. BMW는 한동안 다른 독일 전범기업들과 똑같게 강제 노역에 대해 전쟁의 불행한 결과이며 나치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부각이  1998년 미국에서 집단 소송과 불매 운동 위기에 처하자 2000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기억, 책임과 미래 재단(Stiftung Erinnerung, Verantwortung und Zukunft)'이라는 강제 노역 피해자 배상 재단을 탑재해 이곳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피해 대상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BMW의 공장이 연합군의 폭격을 맞아 깡그리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연합국이 전범 사업체로 선택해 3년 동안 생산 금지 연설을 받아 재정적 어려움에 몰렸다. 또한 503을 비롯한 신규의 고급차 라인은 독일 실정과 맞지 않아서 부진한 실적을 남겼다. 때문에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했는데, 이 어려운 와중에 발매한 오토바이인 R24의 대성공으로 BMW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전 모델인 R23의 설계도마저 불타버려 남은 모델을 뜯어 설계도를 다시 그려 개량했다고. 생산공장 규모나 자재 공급도 매우 열악하여, 오펠 사의 철판을 빌려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륜차가 없었으면 오늘날 살아남지 못했을 정도로 BMW와 이륜차 도로의 역사가 깊다. 1959년 BMW의 이사회는 BMW를 다임러에 매각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주들이었던 크반트 가문의 이복형제인 헤르베르트 크반트와 하롤트 크반트가 BMW 지분의 50% 이상이 될 정도로 자금 수혈을 하면서 위험할 가능성을 넘겼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해 오늘날의 BMW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시기에 BMW 이세타와 노이에 클라세 시리즈가 투입되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제 악화로 인한 자동차 회사 파이어 세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1994년 1월에 BAe(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현 BAE 시스템즈)로부터 로버 그룹을 인수했다. 여기엔 로버와 랜드로버, 미니 등 모두 해당되어 있었다. 덕분에 뉴 레인지로버 초기형에는 BMW X5와 동일한 V8 4.4L 가솔린 엔진이 상승했다. X5의 클램 셸 테일게이트도 레인지로버에서 따온 것이다. 1998년에는 폭스바겐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롤스로이스를 인수했다. 롤스로이스 인수 과정은 좀 특수한데, 원래 BMW가 상당수의 인수했던 것을 폭스바겐이 중앙에는 가로챘다. 하지만 롤스로이스 상표권은 롤스로이스 항공이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BMW는 롤스로이스의 상표권만을 따로 인수한다. 즉 크루 공장을 포함한 기업은 폭스바겐이 인수했으나 브랜드는 BMW가 인수한 꼴이 된 것. 하지만 폭스바겐의 목적은 롤스로이스의 공장과 롤스로이스의 자회사인 벤틀리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결국 둘이 이해관계가 맞아서 롤스로이스는 BMW로, 벤틀리는 폭스바겐으로 가게 되었다. 기존 공장이 폭스바겐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BMW는 영국 굿우드에 신규의 롤스로이스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적자에 2000년 랜드로버를 포드에 매각하고, MG와 로버는 피닉스 컨소시엄에 매각하였다. 특히 로버의 경우 적자 폭이 너무 커 단돈 1파운드에 매각했다. 이후 로버는 2005년 파산하고 중국(China)의 상하이자동차로 넘어갔다. 후에 MG 역시 상하이자동차로 팔린다. 특이하게도 미니는 팔지 않고 독자 브랜드로 계속 생산 중이다. 더불어 롤스로이스는 인수 후 매년 고성장을 거듭하며 2003년 300대에 불과하던 판매량이 2018년엔 4,100대를 넘어선 상태다. 독일 외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르탄버그,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슬린에 현지 공장이 있다고 합니다. 로슬린 공장은 BMW 최초의 외국 현지 공장으로 1973년부터 가동 중이며, 한때 후기형 E90의 남아공 로슬린 현지 공장 생산분이 대한민국에 수입된 적이 있었다. 스파르탄버그 공장은 SUV 생산라인이며, X5의 출시를 위해 신설했다. 멕시코에도 현지 공장을 신설할 예정. 크반트(Quandt) 가문은 네덜란드 이민자 출신으로 귄터 크반트의 부친인 에밀 크반트가 섬유 회사 사장의 딸과 결혼해 그 사업체를 물려받으면서 출발했다. 헤르베르트 크반트, 하랄트 크반트 이복형제와 그의 부친 귄터 크반트는 나치 독일에 부역해 강제수용소 수감자의 강제 노역으로 군수품 생산 및 납품, 인수 합병으로 인해 수백 개의 사업체를 가진 대재벌로 성장했다. 크반트 가문의 산하 기업 중 하나인 AFA(배터리 업체)의 공장에는 처형장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는 크반트 가문의 오점으로 2011년 슈테판 크반트와 주자네 클라텐 남매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독일의 역사학자 요아힘 숄티제크에 의뢰해 1200 페이지에 이르는 진상 리포트를 출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사과나 대상은 없었다. 한편 권터 크반트의 두 번째 부인이 바로 훗날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부인이 되는 마그다 괴벨스이다. 1929년에 마그다는 귄터와 이혼하고 1931년에 괴벨스와 재혼하는데, 두 사람 도로의 아들인 하랄트 크반트는 마그다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종전 후까지 살아남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 기업이었던 BMW는 독일 패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3년 영업정지 처단을 맞고 사망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그리하여 주주들 중 한쪽은 분할 처단을, 한쪽은 메르세데스-벤츠와의 합병을 밝혔지만 전자를 지지했던 소액주주들과 노동조합은 "바이에른의 자존심인 BMW를 라이벌이었던 메르세데스에게 넘길 수 없다"라며 필주 관적인 노력으로 합병을 막았다. 작년도 회계연도 결산에 오류가 있으면 사내 정관 상 인수합병이 불할 수 있다는 조항을 찾아냈고, 실제로 인수합병을 표결에 부치려던 시점 1년 전의 결산에 오류가 있는 걸 찾아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했기에 여전히 위험성이는 해소되지 않았다. 다행히 소액주주들과 노동조합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메르세데스의 주주까지 겸했던 BMW의 대주주 헤르베르트 크반트(Herbert Quandt)가 이 사실을 알곤 마인드를 돌려서 사재를 털어 BMW 주식을 과반까지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헤르베르트는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의 주식이 있었는데, BMW 주식이 30%, 메르세데스 벤츠의 주식이 10%였다고 한다. BMW를 살려내기로 결정하고 사업체를 인수한 뒤 에버하르트 폰 퀸하임, 파울 하네만 등의 유능한 동업자들을 영입했다. 이후 3, 5, 7 시리즈의 출시를 연속 성공시키면서 BMW 회생에 성공하며 '자동차 기업으로서의 BMW'라는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프리미엄 트로이카 중 하나인 BMW가 탄생했다. 한편, 점점 연세가 들어가던 크반트는 자녀들에게 계열 분리로 상속 작업을 해 확신이 가진 BMW 주식 전체와 다른 회사 몇 개를 신념의 비서이자 셋째 부인이었던 요한나 크반트,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슈테판 크반트와 딸 주자네 크반트에게 물려줬다. 요한나가 16.7%, 슈테판이 17.4%, 주자네가 12.5%로, 총 46.7%의 주식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요한나 여사가 2015년에 별세하면서 신념의 모든 지분을 확신과 두 자녀가 각각 소지한 지분 관리 사업체를 통해 주식을 증여하는 방식으로 균등 상속했고, 꾸준히 주식을 구입해왔는지 2017년 기준으로 슈테판의 지분은 29%, 주자네의 지분은 21%로 늘어나 총 50%의 지분을 숙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50%는 소액 주주들이 숙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딸 주자네 크반트는 나중에 BMW에 가명으로 취직하여 평사원으로 일할 때 사내에서 만난 엔지니어 얀 클라텐과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성인 클라텐을 쓴다. 2009년 제비에게 물려 엄청난 돈으로 입막음을 할 뻔했는데, 남편에게 이실직고해서 용서를 구해 역관광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상대적으로 변변치 못한 가문 출신인 데다 헤르베르트는 어렸을 때 망막 질환을 앓아 맹인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가 후계자로 지목된 건 가문의 지배 기업들을 통해 현장교육 (OJT)을 받으면서 경영자로서의 재능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일화로 미국 지사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할 때 75달러에 산 쉐보레 쿠페를 귀국할 즈음 110달러에 팔았다고 한다. 비서 요한나는 사업 보고서 등을 읽어주는 등 회사 사업을 도왔다. 그는 축적된 경력에서 비롯된 재능을 기반으로 신념의 자녀들과 함께 BMW의 감독 이사회에 출석하여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대한 역할을 했다. 요한나 크반트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감독 이사회 이사로 활동했다. 특히, BMW 그룹이 생산대수 확대를 위해 1994년에 로버 그룹을 인수, 관리하면서 생긴 막대한 규모의 적자로 인해 위기에 처하자 감독 이사회 이사이자 최대주주의 권한으로 경영진을 교체하고 인수로 인한 약 70억 유로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로버 그룹을 처분하는 결단을 내렸다. 크반트 가문은 감독 이사회에 참석해 부의장으로서 역할을 한다. 2015년에 별세하면서 신념의 지분 17%를 자녀인 슈테판과 주자네에게 똑같이 상속했다고 한다. 참고로 BMW는 경영 이사회와 감독 이사회의 이원화된 체제로 운영되는데, 평상시 경영은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C-레벨 임원 다섯 명을 중심적으로 구성된 경영 이사회가 담당한다. 하지만, 경영 이사회 이사 선임 및 인수합병, 인적/물적 구조조정 같은 "주요 안건"에 대해서는 주주 대표 및 노동조합 각 10명씩, 총 20명으로 구성된 감독 이사회가 결정권을 행사, 경영 이사회를 견제한다. 참고로 현재 크반트 가문에서는 슈테판 크반트가 감독 이사회 부의장으로서 의장이자 최고경영자와 함께 감독 이사회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로버 그룹 재매각 절차 중에 가치가 있었던 미니를 남겼다. 정작 로버 그룹에서는 내놓은 자식 취급했던 미니였지만 오너 일가의 결단 덕분에 BMW 그룹에 남았고, 결국 대성공을 거둬 BMW 단체의 황금시대를 다시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로버 그룹 산하에 있던 다른 기업인 랜드로버의 SUV 기술을 흡수하여 X 시리즈로 통칭되는 SUV 분야에 무결 함하게 진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그리하여 BMW 같이 다니는 사람은 현재 단체의 중추이자 독일 프리미엄 카 트로이카 중 하나인 BMW, 특유의 디자인과 가치로 인해 세컨드카의 위상을 날리는 미니,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 롤스로이스, 오토바이 분야인 BMW 모토라드로 구성되어 연간 매출액 100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금융 덕후들에게 신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면 이 가정의 지분 상속 과정이다. # 기사에서 BMW 오너 가문의 내용만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독일에서 지분 관리 기업은 특정 기업 그룹을 통제하는 보편적인 지주회사 개념에 한정되지 않고 기업 승계와 전략적 지분투자 등 기업 지분투자와 참견한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전략적 투자 지주 사업체이다. 일종의 패밀리 오피스인 셈. 2. BMW의 경우 1982년 2세대 회장인 헤르베르트 크반트가 사망하면서 미망인 요한나와 두 자녀에게 지분을 물려줬는데, 이 세 명은 각각 자신들의 지분을 관리할 지분 관리 사업체를 설립했다. 3. 두 자녀는 이후 요한나가 설립한 지분 관리 회사의 지분을 2003년부터 6년에 걸치어 넘겨받는 방식으로 BMW 지분을 상속했다. 지분 관리 회사가 증여세를 부담하기 때문에 증여세를 내기 위해 상속 지분을 팔지 않아도 됐다. [10] 4. 독일의 경우 법인 간 배당에 대해서는 법인세가 95%가 면제되기 때문에 두 자녀는 지분 관리 회사가 BMW로부터 받은 배당금을 상당수의 손실 없이 축적, 증여세를 낼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11] 또한, 지분 관리 회사 그 자체는 비상장법인이기 때문에 상장법인인 BMW 지분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도 지분 보유 변동사항을 공시할 필요가 없었다. [12] 5. 실제 요한나가 신념의 지분을 두 자녀에게 증여한 사실은 2015년 그녀가 사망한 뒤에야 알려졌고 그동안 두 자녀는 주가에 대한 외부 세력의 침입을 우려하지 않고 원하는 시기에 단계적으로 지분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결국 독일의 회사법에 힘입어 지분 희석을 막으면서 상속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물론 이렇게 하고도 욕을 안 먹을 수 있는 것은 독일의 기업들, 나아가 오너들에게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 수행을 요구하고 그들이 이를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10월 5일에는 포프가 프로펠러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상표를 BMW의 상표로 접수하면 됩니다. 후에 항공기 분야에 다시 진입하고 BMW 로고가 항공기 광고에 실리면서 프로펠러 형상으로 이미지가 굳어버리게 되지만 본래 중앙에 포지션에서 한 하늘색과 흰색의 조합은 바이에른의 주기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당시 독립 활동이 일던 바이에른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BMW도 많은 소비자들이 자사의 상표 디자인을 혼동하고 있다고 합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프로펠러 마크가 주는 이미지가 회사엔 이득이라 판단하는지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바이에른 주의 문장. 한가운데에 포지션에서 한 파란색과 흰색의 격자무늬가 기간 공국 당시의 바이에른 공작령의 문장으로, 이 큰 방패를 형성하는 다섯 작은 방패 중에 가장 중심이 된다. BMW 로고도 이 격자무늬 문장에서 온 것. 파란색과 흰색이 교차되는 로고는 과거 항공기 제작사였기 때문에 파란 하늘과 회전하는 프로펠러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스캔들이 있지만 이건 나중에 덧붙여진 스토리텔링일 뿐이다. [13] 본사 소재지인 바이에른 주의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BMW 공식 홈페이지에 개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BMW뿐 아니라 바이에른에서 개시된 상당수의 대다수의 것들은 저 바둑판무늬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독일 제국 육군 항공대 (Luftstreitkräfte)나 바이에른 맥주, 바이에른 뮌헨 등 바이에른 출신인 것들에 매우 흔하게 이용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프로펠러 설은 로고가 지금의 형상을 하게 된 지 12년 후인 1929년에 BMW의 회사 광고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글씨체가 변경되는 다양한 변화를 거치고 지금의 1997년에 3D 형태의 입체 로고를 쓰고 있었다. 2020년 3월에 미래 시대를 대비해 안쪽에 검은색을 지우고 단순한 2D 형태로 바뀌었다. 다만, 실차량에 부착되는 엠블럼은 여전히 유지된다. BMW의 대표적 디자인적 특징은 키드니 그릴 (Kidney Grill)이다. 두 개의 신장과 같이 생긴 이 그릴은 1931년에 도입된 이후 BMW의 패밀리 룩을 구축시킴은 물론, BMW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 키드니 그릴이 콧구멍으로 많이 불린다. 전후 1960년대 BMW의 재기에 큰 보탬을 준 BMW 노이에 클라세부터 적용된 호프마이스터 킹크(Hofmeister Kink)[14] 역시 중대한 디자인 요소로 꼽힌다. 차량 디자인은 본래 심심하면서도 특유의 키드니 그릴이 빛을 발하는 스타일이었고, 특히 있다.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한 비전 퓨처 럭셔리 콘셉트카를 보면 앞으로도 더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헤드램프도 작아져서 더욱 커 보인다. 판 후이동크가 수석 디자이너가 된 이후, 3 시리즈를 기점으로 헤드램프와 키드니 그릴을 이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전기차는 보통 커다란 그릴이 필요 없지만, 콘셉트카 버전 i4와 Vision iNEXT도 커다란 세로형 키드니 그릴이 존재하고, Vision M NEXT에도 키드니 그릴을 유지하려 한다. BMW의 키드니 그릴은 사업체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이기에 전기차 시대에도 키드니 그릴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클라우스 루테는 친아들 살해 사건으로 구속되어 BMW에서 나오게 되었다. 후에 정상 참작되어 가석방되었으나 루테는 2008년 타계할 때까지 BMW로 돌아가지 못했고, 단지 외부 어드바이저 자격으로 BMW의 콘셉트 및 양산 차량 디자인을 감수했다. 아드리안 판 후이동크 취임 이후의 차량이 클라우스 루테 시대의 것과 비슷하게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후 미국 출신의 크리스 뱅글이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앉게 된다. 뱅글 시대 이래로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과감하게 변신하였다. 문화적 자부심이 강했던 유럽에서 수석 디자이너를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를 고용한다는 것 그 자체가 당시에 엄청난 화두였다. 심플함이 생명이었던 클라우스 루테의 디자인에 익숙했던 골수 비머 마니아의 눈에는 기괴하게 보여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뱅글의 디자인이 얼마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측면부의 깊은 몰딩과 짧고 가운데 부분이 위로 올라간 트렁크 디자인이다. 당시에 너무나 파격적이라 디자인 부분에서 안티가 증가하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뱅글의 디자인은 곧 세계적 트렌드가 되어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현대 등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도 과상당수의 직선 위주의 엄숙한 디자인을 버리고 다이내믹하고 굴곡 있는 디자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뱅글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고 당시의 안티들은 뱅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뱅글버트는 불멸의 레전드가 되었다. 후임인 네덜란드의 아드리안 판 후이동크(Adrian van Hooydonk)[15]가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뱅글의 디자인을 보수화한 경향을 보유하며 전면부의 키드니 그릴을 점점 키워가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페이스리프트 차량들은 독특한 특질이 있는데, BMW LCI의 경우 신규의 엔진을 삽입하여 외관보다는 차량의 성능에 페이스리프트의 목적이 있었다. 신형 엔진을 LCI 모델에 탑재하고 그 후 신규의 모델에 LCI와 같은 엔진을 얹는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외관의 도약에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는데 바뀌는 것은 기껏해야 헤드램프나 테일램프, 범퍼 등 일부분이었며 인테리어도 상당수의 손대지 않았다. 특히 스티어링 휠 디자인이 바뀌는 상태는 상당수의 없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는 E65 7 시리즈, F20 1 시리즈, E46 3 시리즈, F07 5 시리즈 GT 등 외관적 페이스리프트에도 크지는 않지만 필요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BMW 4 시리즈 2세대를 기점으로, 최근 BMW의 디자인은 뱅글버트가 초기받았던 비판의 목소리와 매우 비슷하게 큰 지탄을 받고 있는데 한국 출신의 임승모 스파이 디자이너가 만든 큰 것을 넘어 범퍼까지 침입한 엄청난 크기의 키드니 그릴에 관한 비판이 많은 경우이다. 아예 뉴트리아 에디션, 돼지코 그릴이라는 안 좋은 별명까지 생긴 경우이다. 갈수록 커지는 그릴 크기에 대해 점점 불호 생각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돼지코 그릴이 올바르게 기름을 붓어버린 셈이 됐다. 과연 이번에도 뱅글버트처럼 시장을 선도할지 아님 최악의 디자인이란 평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고 합니다. 2021년 공개한 BMW XM의 콘셉트카에서도 또 한 번 엄청난 크기의 키드니 그릴을 선보였는데 혹평이 더 심해지면서 디자인이 산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는 평가를 계속 듣고 있다고 합니다.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혁명적 변화가 있기 때문에 2001년형 E65 7 시리즈부터 도입한 독특한 원형 컨트롤러인 iDrive는 BMW의 특징 중 혼자로 자리 잡았고 2000년형 E52 Z8부터 도입된 시동 버튼도 다른 회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인테리어에 신경 쓰느니 그 시간에 더 날쌔게 달릴 입장을 한다던 BMW가 F바디로 넘어온 이후로 고급진 소재와 럭셔리한 디자인을 도입하여 더욱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BMW 차량의 실내의 가죽 마감이나 시트는 과상당수의 스포츠 세단의 의도적 단순함이 보고 싶다는 팬이 있을 정도다. 이렇듯 과거에 비해 많이 고급스러워졌다. BMW는 2007년부터 아날로그 조이스틱 모양의 자동변속기 레버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조이스틱형 레버 또한 BMW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 시프트다운과 시프트업의 포지션에서가 다른 브랜드와 방향이 다른데 이는 레이싱카 방식의 시프트 레버 조절 방식이고 이는 BMW가 스포츠성을 강조하는 회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2005년부터 메르세데스-벤츠가 2002년 BMW 7 시리즈에 승용차로써는 처음 탑재했던 핸들 칼럼식 자동변속기 레버를 신규의 실내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엔진 제조회사에서 출발한 브랜드답게 엔진 중 휘발유 엔진을 남달리 잘 만드는데, BMW의 휘발유 엔진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별명이 실키 식스이다. 실키 식스란 직렬 6기 통 휘발유 엔진을 의미하는데 마치 실크처럼 부드럽게 고회전 영역으로 RPM이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근거로 메르세데스와 아우디에 비해 아웃소싱을 남달리 많이 하고 있다. 애초에 BMW 쿠페 취급을 받는 2020년형 도요타 수프라는 Z4의 I4, I6 엔진이 들어간다. 여기에 더해 2021년에 나올 신형 렉서스 IS에는 BMW의 직렬 6기 통 엔진을 사용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 재규어 F-타입이 BMW의 4.4리터 8기 통 엔진을 쓰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맥라렌의 전설적인 자동차인 F1 역시 BMW의 V12 엔진으로 꽤 오랜 기간 가장 날쌘 양산차 타이틀을 쥐고 있었고, 자연흡기 차량으로는 아직도 가장 민첩한 차량이다. 사실 맥라렌이 원했던 것은 당시 F1을 주름잡던 혼다의 엔진이었지만, 혼다는 NSX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요구를 거절하고 그 대신 BMW의 제안으로 탑재하게 된 엔진이 70/02 엔진인 것이다. 도요타의 경우 타 브랜드가 엔진 다운사이징을 할 때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했다. 덕택에 프리우스 같은 도심형 차량이 인기를 끌며 도요타의 캐시카우를 톡톡히 해줬지만 그에 반해 전통적인 엔진을 쓰는 차량들은 4기 통을 제외하면 크게 투자할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도요타 외에도 거의의 일본 자동차 업체의 상황은 똑같다. 90년대 이후로 일본 차는 재미없는 차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도 2002년 배기가스 규제로 수많은 일제 스포츠카들이 단종되며 당시 정점에 달했던 스포츠카를 만드는 일이 확연히 줄었고, 아예 2025년 내연기관만 탑재한 차의 생산을 중지를 선언한 상태다. 재규어의 경우는 당시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묶여 이리저리 팔려 다니면서 엔진 개발은 커녕 목숨 붙이고 살아있기도 바빴다. 자체 엔진을 개발할 사태가 아닌 것이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필두로 내세우는 브랜드인지라 고유의 스포츠성을 갖췄다. 우선은 가속 감각으로, 스로틀과 함께 ZF제 변속기의 재빠른 변속을 통해 즉각적인 리액션을 보인다. 그리하여 운전자는 어느 영역에서든 스트레스 없이 과감하게 가속을 할 수 있다. 특별히 ZF 8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이 좋다. ZF제 변속기는 BMW만 쓰는 게 아니지만 유독 BMW와 만나면 그 성능이 극대화되는데, 전문가나 대중들에게 가속 감각과 변속기의 유능함은 어떠한 BMW 자동차 가든 지적받지 않는다. BMW 차량은 시리즈에 관계없이 차량의 중량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표현을 준다. 이 느낌은 저속에서 자가용을 운행할 때 차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가속하다 보면 한 세그먼트 밑쪽의 차를 운행하는 표현을 받는다. BMW가 자랑하는 3 시리즈를 예를 들어, 저속에서는 D 세그먼트 차량의 묵직함이 느껴지지만 시속 60 km가 넘어가면 아래 세그먼트인 C 세그먼트 해치백을 운행하는 듯한 착각을 준다. 다음과 같이 즉각적인 스로틀 반응과 고속 운행 시 가볍게 느껴지는 무게감은 결국 자동차와 운전자의 순기능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운전자는 계속해서 주행하고 싶다는 즐거운 표현을 받는다. 다음과 같이 적극적인 순기능을 주는 자동차는 많지 않다. 특별히 기계적인 정교함보다는 운전자에게 자극을 주는 표현을 중요시한다. 가령 가속 시 실제 속도보다 더욱 재빠른 표현을 주거나 자동차가 가속하고 있다는 표현을 온전히 운전자에게 보낸다. 이게 바로 다른 차량과의 제일 큰 차이점이다. 특별히 이 가속 감각은 고성능 디비전인 BMW M으로 가면 더더욱 두드러져 즉각적인 대응이 너무 날카로워서 서늘한 감성을 선사한다. 결론적으로 차량의 적극적인 순기능과 감성적인 자극이 BMW가 자랑하는 가속 감각이다. 또한 고집스럽게 1:1 (50:50)의 무게 배분을 라인업에 관계없이 지키려 노력한다. 이는 BMW의 오랜 고집으로, 앞쪽에 있는 무게를 담당하는 부품을 최대한 뒤쪽으로 밀어 넣어 무게중심으로 을 가운데로 맞추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량에서 제일 완벽한 무게중심으로 은 미드쉽 레이아웃이라며 평가하는데, 대부분이 FR 기반 차량인 BMW는 태생적인 폭을 다음과 같이 극복한다. 다음과 같이 가운데로 몰린 무게중심으로 은 확실한 조향감을 전달하여 정교한 핸들링을 선사한다. 흔히 돌리면 돌린 만큼 움직인다는 표현을 받는다는 것이 핸들링이 좋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브레이크도 앞은 뒤쪽으로, 뒤는 앞쪽을 향해 만들어 BMW의 제동능력은 동급 최강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젠 옛말로 다행히 G바디로 넘어오면서 일반 차량은 대형 피스톤을 지급하고 M8, M5, 일부 신형 M3, M4에는 세라믹 브레이크를 장착해준다. 즉 이제는 브레이크 튜닝을 하지 않고도 서킷 주행을 할 수 있다. 코너링 또한 특유의 스포츠성을 지니는데 코너링 성능을 위해 서스펜션을 단단히, 스티어링을 엄중하게 세팅한다. 다만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시절과 다르게 EPS 시대에 와서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데, 여전히 동급의 타사 차량들보다 무겁다. 예를 들어 현재 미니 쿠퍼의 스티어링 무게가 예전의 3 시리즈 스티어링 무게감과 비슷했다. F바디 이후 EPS로 넘어와 예전 같은 묵직한 스티어링 감각을 느끼지 못하자 올드 BMW 마니아들은 공기압을 통해 예전 같은 표현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예전의 BMW의 묵직한 스티어링이 얼마만큼 훌륭했는지 짐작케 한다. 여기에 단단한 서스펜션도 함께 역량을 보탠다. 결국 단단한 서스펜션, 묵직한 스티어링, 1:1에 최대한 가까운 무게 배분과 제동력 세팅이 BMW 특유의 핸들링과 코너링을 만들어낸다. 어떠한 사람들은 핸들링과 코너링이 뭐가 다른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핸들링은 차의 일반적인 행동이고 코너링은 차가 코너에서 보여주는 행동이다. 그 특유의 코너링 특질은 일반 차량과 고성능 차량인 M 차량과 구분해서 나타난다. 보편적인 세단 및 SUV 차량의 코너링 특질은 코너링 시 높은 회두 성을 토대로 스티어링 각도에 맞게 확실한 타이밍에 코너 라인에 진입한다. 다음과 같이 코너 진입 후 스티어링을 조향 하면 스티어링의 추가적인 보타 없이 각도를 유지하며 코너를 탈출한다. 이 같은 특성을 “마치 기차 레일이 깔려 있어 기차가 레일을 통과 하듯이 라인을 그리며 깔끔하게 빠져나간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본적인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고성능 차량인 M은 확연히 다른 감촉의 코너링 특성을 지닌다. M은 기본적으로 일반 모델과 같이 정교하고 깔끔한 코너링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고속으로 코너에 진입할 경우, 높은 출력을 사용해 코너링 시 앞머리가 더 말려들어가는 진입 오버스티어 표현을 준다. 동일시에 리어 부분의 슬립을 적극적으로 허용하여 리어가 프런트보다 조금 늦게 방향전환을 하고 제동 시 전자장비가 프런트보다 리어에 살짝 늦게 개입한다. 그리하여 의도적으로 리어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차가 스핀 할 것 같은 표현을 주며 스릴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립을 제대로 잡고 있으며 스핀 영역에 다다르지 아니하고 흥미의 영역에 머물게 하여 재미를 주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뒤를 털면서 다닌다"는 고성능 후륜차량의 특성인데, 높은 출력을 온전히 리어에서만 감당하기 때문에 접지를 놓치기 쉬운 이와 같은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자극을 전달하되, 균형적인 그립의 제어를 하는 것이 M 차량들 고유의 특성이다. 위와 같은 BMW의 운전의 즐거움과 코너링 및 핸들링 특성을 잘 정리해놓은 기사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위와 같은 스포츠성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평판이 “아무리 BMW보다 더 잘 돌고 더 빠르고 더욱 잘 서는 차가 있더라도, 운전의 재미 하나만큼은 BMW가 최고다.”라는 평가이다. 즉 "Sheer Driving Pleasure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라는 BMW의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궁극의 운전 흥미가 BMW가 추구하는 스포츠성이다. 이 같은 즐거움이 시대를 거쳐 계속 BMW 마니아들이 존재하고 탄생하는 제일 큰 이유이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이 BMW가 스포츠 세단의 대명사가 된 이유이다. 위와 같은 BMW가 주는 운전의 재미의 특징을 잘 설명해 놓은 기사가 있으니 참고해 보는 것 또한 좋을 듯하다. 대다수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95 ℃ 이하로 수온과 유온을 유지하는데 반해서 BMW는 수온과 유온을 다른 제조사들보다 높은 110 ℃ 내외를 유지한다. 수온과 유온이 높을수록 냉각으로 사라지는 열 동력이  줄어들고 엔진의 연소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인데, 단점도 있다고 합니다. 고무나 플라스틱 개스킷, 엔진 오일, 미션 오일, 부동액 수명이 짧아진다. 그래서 BMW가 자랑하는 동급 대비 제일 높은 출력과 연비는 높은 수온과 유온으로 내편 성을 희생시켜 뽑아내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고무류의 약한 내구성, 밸브 가이드 스템 씰 수명 저하로 인한 비정상적인 엔진 오일 소모, 누유, N47 엔진에서 발생했던 타이밍 체인 절손 등 BMW 차량들의 고질병의 원인 중 혼자로 높은 수온과 유온, 그리고 긴 오일 교환 주기가 꼽힌다. 레전드적인 맥라렌 F1의 S70/02의 경우는 아예 매 주유시마다 엔진 오일을 체크하는 것을 권장했을 정도다. 오일 교환주기도 이 같은 높은 유온으로 인해서 특히 비난의 대상이 된다. 오일류의 수명은 유온이 높아질수록 급격히 줄어들고, 이런 사유로 시판되는 오일 중 수명이 제일 긴 축에 속하는 모빌 1 0W-40을 OE로 사용하는 닛산 GT-R도 110 ℃를 기준에 의하면 해서, 이보다 낮은 경우 15,000km 주기로 높은 경우 5,000km 주기로 교환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BMW와 그 산하의 미니는 유온을 110 ℃ 근처로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20,000~30,000km마다 엔진 오일을 교환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탐색에서 설명서에 표기하는 엔진 오일의 교환 주기는 엔진 가동 시간을 주행거리로 환산해서 표기하는 것이다. 엔진 오일 문서의 교환 주기 문단에 자세히 설명된 것처럼, 유럽차들은 공통적으로 15,000km~34,000km의 긴 엔진오일 교환주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 나라의 주행 여건이 한국보다 훨씬 고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차들의 이 교환 주기는 시내 주행이 적지 않은 한국 도로 사정과 전혀 맞지 않다. 긴 엔진 오일 교환 주기는 유럽차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비판점으로 BMW만의 비판점은 아니나, BMW 특유의 높은 수온과 유온은 엔진 오일 등 케미컬의 수명을 위급하게 저하시키기 때문에 다른 유럽차들보다 더 강하게 비판받는다. 쉘, 모빌 1, BP, 훅스, 라베놀 등 정유사 혹은 대형 제 탐색에서 내놓는 탑 티어급 오일은 BMW 규격 인증을 대체로 정식 승인받았고, [17] BMW 순정 오일도 쉘 OEM(캐스트롤 OEM에서 변경)으로 검증된 제조사의 탑 티어급 오일과 신유 분석을 해서 비교해보면 기유와 첨가제 모두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즉, BMW 순정 오일이 탑 티어급 오일과 동급인 건 맞지만 유달리 특별한 레시피를 사용하거나, 유달리 특별히 수명이 길거나 하는 등의 압도적인 최고의 성능을 가진 오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운행되는 BMW 차량의 사용유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full SAPS 오일을 사용하고, 고속도로 정속 주행 중심의 굉장히 마일드한 주행 환경에서야 10,000 km 이상의 교환이 추천되는 등 엔진 오일 교환 주기가 국산차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도 짧게 추천되는 경우가 많다. 먼저 full SAPS 규격인 ACEA A3/B4에 기반한 BMW LL-01 순정 0W-30 오일(캐스트롤제)을 사용한 E39 530i의 사용유 분석을 살펴보면 시내주행 9,815km 만에 TBN이 2.51 mg KOH/g밖에 남지 않아 교환주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모빌 1 0W-40[18]을 사용한 F01 740i는 장거리, 항속 주행한 조건에서 수명이 14,000km로 예상되었지만, 동일한 오일을 사용한 젠쿱 2.0은 평소에 유온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에 ECU 맵핑, 부스트 업을 했음에도 한여름에 간헐적으로 유온 130 ℃가 찍히는 가혹 주행으로 7,000km를 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TBN이 8.45 mg KOH/g가 남아서 예상 수명이 15,000km로 예상되었다. 다음으로 mid SAPS 규격을 사용하는 디젤 차량들의 사용유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full SAPS 규격 오일을 사용하는 가솔린 차량들보다 대체로 짧은 수명이 예상되고 있다. 사용유 분석 결과 ACEA C3 기반의 BMW LL-04 규격 순정 오일을 사용한 F10 530d가 12,500~12,900 km, S-OIL 세븐 골드 #9 C2/C3 5W-30을 사용한 G11 740d는 8~8,500km이 예상됐다. 통상적인 주행보다 가혹한 조건에서는 모튤 8100 X-clean EFE 5W-30을 사용한 G30 520d가 6,700~7,700 km, SK ZIC TOP 5W-30을 사용한 F20 118d가 6,000 km 정도의 수명이 예상되었다. 최신 mid SAPS 규격 순정 오일은 전체적으로 조금 특이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BSI 권장 주기인 20,000~30,000 km에는 여전히 못미치지만 마일드한 조건에서 10,000 km는 조금 넘게 버티는데, 황산 회분(sulfated ash, SA) 함량이 ACEA C 카테고리보다 높게 분석되는 것. ACEA C2 기반 BMW LL-12 FE 순정 0W-30을 사용한 G20 320d는 13,400 km의 수명이 예상되었는데 규격 기준인 0.8 wt%를 넘기는 1 wt% 이상의 SA가 검출되었고, ACEA C5 규격에 기반한 BMW LL-17 FE+ 순정 0W-20을 사용한 G30 520i도 평균 속력 37km/h의 마일드한 주행에서 12,000 km 수명이 예상되었는데 여기서도 SA가 규격 기준인 0.8 wt%보다 높은 1.17 wt%가 나왔다. LL-17 FE+의 신유 분석에서도 SA가 0.9442 wt%가 나와 순정 오일이 스스로의 인증 규격에 미달하는데,[19] 순정 오일이라서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SA를 조금 더 넣고 후처리장치 호환성은 자체 테스트를 해서 해결 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제조사 권장 주기인 20,000~30,000km 대로 케미컬을 관리하다가는 보증 기간이 지나서 수리비 폭탄을 떠안는 경우가 꽤나 있기 때문에, BMW 차량을 보증기간 종료 이후까지 장기 보유할 계획이라면 사용유 분석에서 추천되는 것과 같이 오일을 자주 교환하는 것이 좋다. 일부 차량의 경우 스포츠 모드에서 써모스탯의 개방 온도가 낮아져 유온과 수온을 95 ℃ 이하로 유지하기도 하기 때문에 스포츠 모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써모스탯의 개방 온도를 낮추는 튜닝을 해서 유온과 수온을 다른 제조사와 비슷하게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이 엠블럼은 원래는 왼쪽 펜더 뒤에 달던 것인데, 2013년 6월부터 트렁크로 옮겨 달고 있다. BMW 고유의 전자식 선제적 상시 4륜 구동 (AWD) 장치. 풀네임은 'Proactive Electronic Automatic All-Wheel Drive System'이다. BMW의 SUV가 X시리즈인 이유도 바로 이 4륜구동 장치를 탑재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승용 모델에도 장착된다. 후륜구동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BMW 답게 당연히 후륜구동 기반의 AWD 시스템이며, 엔진에서 발생하는 토크는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트랜스퍼 박스에 있는 다층구조 클러치를 통해서 각각의 휠로 전달된다. 따라서 다른 AWD 시스템과 달리 중앙 디퍼런셜 박스가 없다. BMW E60 5 시리즈의 xDrive 트랜스퍼 케이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전후륜 토크 배분이 40/60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토크 배분은 50/50에서 100/0, 0/100까지 극단적으로 좌우 및 앞뒤 토크 배분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선제적 시스템이라 하는 것은 바퀴의 미끄러짐이나 노면의 변화가 감지된 뒤에 토크 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0.01초 단위로 끊임없이 노면 및 구동 상태를 모니터링해서 슬립이 일어나기 전에 알아서 토크를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클래스의 레이싱에 출전해오다가 마침내 2006년, 스위스 국적의 중위권 F1 팀인 자우버 팀을 인수하면서 포뮬러 1에 워크스 팀으로서 공식 데뷔하였다. 이전에도 브라밤, 윌리엄즈에 엔진을 공급했었지만, 당시 BMW 그룹으로서는 성적이 영 만족스럽지 않아 2006년부터 V10 엔진에서 V8엔진으로 규정이 바뀌는 해를 틈타, 윌리엄즈 대신 직접적으로 팀을 운영하기 위해 자우버를 인수했던 것. 사실은 1980년대부터 엔진 공급사로 F1에 계속 참가하고 있었다. 모든 경기가 그렇듯 우선은 레이스 우승을 1차 목표로 나름 차량 개발을 통해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2008년 로버트 쿠비차가 첫 우승을 일군 후 다음 단계인 챔피언쉽 우승을 노리기 위해 팀의 모든 역량을 2009년 차량 개발에 올인하였다. 다만 2008년 에어로 측면에서 레이스카의 업데이트에도 더욱 노력을 쏟아부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므로, 거의 모든 규정(타이어, 에어로파츠, 차량 길이, 너비 등등)이 대폭 변화되는 2009년이 F1에서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본 것이다. 변화된 2009년 규정의 화두인 에어로다이내믹과 KERS가 적용된 차량을 F1 팀들 중 최초로 공개하기도 하고, 시즌 시작 전까지 페라리, 맥라렌과 더불어 3강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09 시즌에서 변경된 에어로다이내믹의 해답은 2009년 챔피언 팀인 브런 GP가 보여주듯이 KERS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기술이었다는 게 밝혀지고 기술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더블덱 디퓨저가 진짜 해답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결국 모든 걸 KERS에 올인하다시피 한 BMW는 완전히 망했으며, 가장 먼저 변화된 에어로다이내믹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위권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결국 2009년은 KERS를 장착하지 않고 기술 규정의 허점을 잘 활용한 브런 GP가 챔피언이 되었다. 이후 2009년 후반기에는 비용대 효과면에서 F1에 남는 게 손해라는 방침을 본사에서 최고의 출력을 발휘했으며, 크게는 상위권팀 대비 25~50마력, 하위권 팀 대비 100마력 정도나 넘게 차이 나기도 했다. 이때 F1을 본 사람들은 윌리엄스가 쓴 BMW 엔진의 미친듯한 직진 스피드가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당시 드라이버들도 직선에서 추월당하고 나서 차량의 리어 윙에 쓰여있는 'BMW Power' 문구를 보면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있었다. WRC에도 미니를 투입했다가 1년도 안 되어 철수시킨 흑역사가 있다. 안습(...) 그리고 2015년에는 WEC에 BMW 엔지니어들이 기웃거리는 모습들이 포착되어 팬들은 이들이 다시 한번 내구레이스에 나타나지 않을까 예측했는데, 2016년 9월 말에 2018-19 시즌부터 LM GTE 클래스로 다시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철수했다. 상술되었다시피, BMW는 대중들의 인식들과는 달리 모터스포츠 분야에선 팬들에게 겁쟁이, 기회주의자, 욕심쟁이 등등으로 욕을 엄청나게 먹는다. 팩토리 팀으로 참가하는 경우 자사에 이익이 안 나오겠다 싶으면 바로 철수했기 때문(...). 덕분에 워크스 팀으로 제대로 레이스에 참여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GT 투어링카 대회 같은 경우 개인 팀들이 꾸준히 출전하기 때문에 레이스카 개발 분야는 계속 지원해주고 있으며, DTM에서도 아우디와 잘 겨루고 있다. DTM 같은 경우 아우디, 메르세데스만 나왔기 때문에 자존심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양산차 기반으로 나오기 때문에 기술 발전 등에서 BMW 입장에선 크게 손해 볼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2019년 메르세데스가 포뮬러 E 출전 준비를 이유로 DTM에서 철수해버렸다. 그리고 아우디가 포뮬러 E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BMW 역시 하루 만에 포뮬러 E에서 철수한다는 입장을 밝혀 다시 비난을 받고 있다. 어찌 되었든 모터스포츠 팬들에겐 이미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상태이다. DTM 출전 의사를 밝혔을 때도 참가는 반갑지만 응원은 안 하겠단 반응도 꽤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메르세데스가 포뮬러 E로 떠난 상태에서 애스턴 마틴과 아우디마저도 포뮬러 출전 준비 (애스턴 마틴은 F1, 아우디는 FE)를 위해 빠져서 결국 DTM에는 BMW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만 BMW가 FE를 빠지고 2023년에 LMDh로 르망에 또 복귀한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흑역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1999년 르망 24시에서는 BMW V12 LMR을 내세워 우승한 바 있다. 또 자사 브랜드 미니를 앞세워 다카르 랠리에 2011년부터 매년 출전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미니 올 4 레이싱 팀이 다카르 랠리에서 4연승을 기록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서 수입차 시장이 전면 개방된 후 1988년 코오롱그룹을 통해 수입되어 판매를 시작했으며, 코오롱그룹은 현재도 BMW의 딜러 중 하나다. 1995년에 대한민국 법인인 BMW 코리아를 설립하고 정식으로 진출, 직판 체제를 구축하여 현재는 코오롱그룹 계열 코오롱모터스 외에도 몇 개의 정식 딜러가 더 있다. [22] 과거부터 5 시리즈의 선전에 힘입어 여러 번 수입차 판매 1위를 달성했으며, 2016년부터 벤츠에게 1위를 내주었지만, 2021년 현재 국내 시장에서 현대자동차, 기아, 제네시스, 벤츠 다음으로 5위, 수입차 판매량 기준으로 2위를 기록하여 신차 부재, 판매 부진, 경영 악화로 적자를 먹고 있는 국산차 브랜드인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한국 GM(쉐보레)를 앞지르고 있다. 그래서 너무 많이 굴러다녀서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와 묶여 국산차 같은 외제차 느낌이 들 정도다. 1997년에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23]를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시켰으며 2000년에는 수입차 현지 법인 최초로 한국인 김효준 대표를 채용하여 2018년에 회장에 오르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실제로 지난 10년 간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이 크게 오른 분위기는 BMW 코리아의 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세계에서 세 번째로 BMW 드라이빙 센터가 2014년 인천 영종도에 들어서게 된 것도 BMW에게 한국시장이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다만 양적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감행하였고 이 프로모션 정책은 노세일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는 볼보나 렉서스 정도를 제외한 수입차 브랜드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아우디는 BMW보다 훨씬 더 많은 프로모션 할인을 진행하고 있고, 자존심이 강해 프로모션 할인을 아예 하지 않던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양적 확대를 위해 많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의 프로모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4] 다만 프로모션 자체는 크게 비난받지 않지만, BMW의 경우 유독 신차 출시 초기에 더 이상의 프로모션은 없다고 했다가 몇 달만 지나면 과감한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말을 바꾸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BMW는 본국인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충성심을 가진 고객을 보유한 회사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저 말 바꾸기 식 프로모션 정책은 충성도 높은 고객의 충성심을 떨어트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초기 프로모션 불가 문제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거짓말이다. 물론 위와 같은 프로모션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BMW는 2020년 들어 무분별한 프로모션을 줄여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겠다고 공헌하였다. 특히 M차량들의 프로모션을 줄여 한국시장에서 M차량들의 가치를 다시 평가받겠다 공언을 하였다. 실제로 BMW의 높은 프로모션이 아우디처럼 모든 차량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세단 모델들의 할인율이 높은데, 가장 치열한 시장인 E세그먼트인 5 시리즈와 6 시리즈 GT가 비교적 할인율이 높으며, F세그먼트인 7 시리즈의 할인율은 더 높다. 하지만 강점을 보이고 있는 SUV 차량들인 X 시리즈들은 세대변경이나 페이스리프트를 앞둔 끝물이 아닌 이상 프로모션이 사실상 없고 대기도 길다. 특히 시장에서 가장 강한 강점을 보이고 있는 D세그먼트인 3 시리즈는 G바디 세대로 접어들면서 과거 F바디 세대에 비해 풍부한 옵션을 들여와 가격을 꽤나 높여 판매하였고 프로모션은 줄였다. 심지어 M차량들의 가치를 올리겠다고 약속한 2020년부터 정말 프로모션이 박해졌다. 가령 M2 컴페티션 차량의 경우 1년 가까이 모든 딜러사에서 프로모션이 거의 없었다.(과거의 M2의 경우 프로모션은 초기부터 엄청났었다.) 이런 상황은 M8도 동일하며 X3 M, X5 M 등의 차량들도 유사한 상황이다. 심지어 M340i 차량도 M배지를 부여해서 그런지 프로모션이 박하다. BMW가 공헌한 대로 M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약속을 켜고 있고 E, F세그먼트를 제외한 세그먼트에서 프로모션도 과하게 하지 않는다는 공언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강하게 지적받았던 무분별한 프로모션에 대한 비판은 향후 몇 년은 지켜볼고 판단할 상황인 듯하다. [25] 소비자들에게는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 스포티한 세팅을 중시하고 3 시리즈와 5 시리즈가 회사의 주력 모델인 만큼 비교적 젊은 층과 스포티한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타는 차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5 시리즈의 경우 F10 시절만 해도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520d가 많이 팔렸긴 했지만, 신형인 G30부터 530i가 520d보다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2019년 연간, 그리고 2020년 상반기까지 530i가 520d보다 더 많이 팔렸다. 또한 스포티함을 강조한 MSP라인의 판매량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시간이 지나며 국내에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스포티한 세팅이 좋아 BMW를 많이 선택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시리즈의 경우 스포츠성을 강조한 5시리즈 하위 트림보다 비싼 3시리즈 상위 트림 330i 모델이 전세대, 현세대 할 것 없이 우수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지만 벤츠에서는 동급인 C300 모델이 국내에 판매조차 못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 처음 출시된 준 고성능 차량인 G20 M340i는 출시된 첫해에 C43 AMG보다 많이 팔렸다. 고성능 모델로 눈을 돌리면 2019년 메르세데스 E63 AMG는 77대가 팔렸고 BMW M5는 199대가 팔렸으며 2020년 상반기에도 M5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즉, BMW 구매층의 대다수는 컴포트 성보다 스포츠성을 중시한다. 이는 컴포트 한 세팅을 중시하는 경쟁사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와 E클래스가 상대적으로 중장년층과 가족을 위한 차라는 이미지와는 다른 점이다. 위와 같이 한국에서 스포츠 한 차량으로 자리매김하던 중, 2018년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라는 대형사고가 일어나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기도 했다. 화재 사고 이후 이미지를 엄청나게 깎아먹었고, 본사 차원에서 어떻게든 이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신형 5 시리즈와 6 시리즈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등 한국 시장을 우대하고 있다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줘 이미지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원래부터 한국은 연쇄 화재 사고 이전부터 BMW 입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장이었다. 특히 5 시리즈가 속한 E세그먼트 시장은 F세그먼트의 S클래스, D세그먼트의 3 시리즈와 다르게 특별한 강자가 없는 시장이다. 더불어 판매량이 가장 많은 시장이기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시장이다. 이렇게 중요한 시장에서 BMW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고 판매량도 역전당했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수입차 시장에서 레몬법을 도입하고 차량 수리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국내 부품 시장에 과감하게 투자하였다. 또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월드 프리미어를 최초로 시행하는 등[26] BMW는 시장에서의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 등을 통해 시장에서 점유율을 점차 끌어올렸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5 시리즈와 E클래스가 페이스리프트를 동시에 하는 시점을 노려 이 시기를 지난시절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기 위한 기회로 여기고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 상황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국산차와 다르게 독일산 세단의 단단한 하체의 이미지를 심어준 회사가 BMW이다. 과거에 국산차 하체는 소위 물침대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만큼 부드럽고 승차감 위주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이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특성을 가진 차가 BMW였고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특성이 국산차와는 다른 느낌의 수입차를 설명하는가장 흔한 설명중 하나인 “외제차는 단단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차가 BMW였다.